적확한 어휘 쓰기
<르네상스>
낱말의 의미를 확장해 쓰는 것은 언중의 말글살이를 용이하게 한다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낱말 중 어느 것을 얘기해도 틀리지 않을 테니…. 하지만 동의어가 많다는 것이 말글살이를 편하게 하는 것인지는 더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굳이 플로베르의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을 빌릴 필요도 없이 설화에 휘말리는 유명인들을 보고 깨닫는다.
두 번째 의미 확장이 부적절한 낱말로 '르네상스'를 이야기하고 싶다.
르네상스(<프>Renaissance)「명사」『역사』 14세기~16세기에,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하여 유럽 여러 나라에서 일어난 인간성 해방을 위한 문화 혁신 운동. 도시의 발달과 상업 자본의 형성을 배경으로 하여 개성ㆍ합리성ㆍ현세적 욕구를 추구하는 반(反)중세적 정신 운동을 일으켰으며, 문학ㆍ미술ㆍ건축ㆍ자연 과학 등 여러 방면에 걸쳐 유럽 문화의 근대화에 사상적 원류가 되었다. ≒문예 부흥01(文藝復興)ㆍ학예 부흥.
부흥(復興)「명사」 쇠퇴하였던 것이 다시 일어남. 또는 그렇게 되게 함. ≒흥복02(興復). ¶ 민족 부흥에 앞장서다/농촌 부흥 운동에 전념하다/경제 부흥을 위해 노력하다/휴전이 성립된 후, 대한민국은 황폐한 국토의 재건과 부흥에 전력을 기울였다.
‘르네상스’는 ‘어떤 특정한 시대’의 ‘문예(학예)를 부흥’시킨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 낱말을 쓰려면 첫째, ‘어떤 특정한 시기’가 있어야 하고, 둘째 ‘문예 (학예)’를 부흥시킨다는 의미를 갖추어야 한다. 유럽의 르네상스는 그리스․로마 시기의 문예를 부흥시킨다는 의미이다. 이를 우리나라에 적용한다면 우리가 부흥시키고자 하는 ‘어떤 시대’의 ‘문예’가 있어야 한다. 가령 현재를 ‘시조의 르네상스 시대’라고 한다면, 이는 조선 후기 문화를 상정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신문이나 방송, 공공기관에서 종종 쓰는 단순히 ‘발전’의 의미는 아닌 것이다. 프랑스나 영어권에서도 르네상스를 단순히 전성기나 번영기의 의미로 쓰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영어권에서는 전성기를 ‘heyday, prime’, 번영기를 ‘halcyon years’으로 쓰고 있다.
예)·한국인 특유의 스피드 경영과 창조적 글로벌화로 대응하면 세계의 중심에 선 우리 제조업은 또 한번 ‘르네상스’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D일보) →전성기, 번영기
위 예문의 경우, 제조업이 번성했던 시기가 있으므로 시기에는 문제가 없지만 제조업이 ‘문예’에 속하기는 어려우므로 ‘르네상스’를 쓰기엔 부적절하다. ‘전성기’ 정도로 고치는 것이 나을 듯하다.
·‘에너지 신(新)르네상스시대’를 맞이하면서 새삼 가치를 재평가받는 사업이 바로 전력생산 분야다.(J일보) →신(新)에너지시대
예문의 ‘신(新)르네상스시대’는 첫째 둘째 어떤 조건도 충족시키지 못한다. ‘새로운 에너지 시대’ 정도가 적합하겠다.
·이 정부의 원전 르네상스 정책이 위험한 발상인 것도 우리 사회를 점점 더 원전 의존형 국가로 만들고, 그 때문에 파생하는 문제의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H신문) →발전 정책
·“경주지역으로의 이전 작업이 가시화되고 있다”며 “미래에 열리게 될 원전 르네상스 시대를 지금부터 차곡차곡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HK신문 ) →원전 전성시대
이 예문들도 첫째 둘째 조건을 모두 충족하지 못한다. 원전이 전성기를 이룬 적이 없고, 문예와는 상관없기 때문이다.
·동아가 카르텔을 깨고 치고 나가자 조선도 어쩔 수 없이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고, 동아와 조선의 행보는 결과적으로 여론 주도력의 ‘신문 르네상스 시대’를 열고 있다.(MD신문 2013년 2월 15일)
위 예문은 문맥상 ‘르네상스’를 쓰기에 상당한 근거가 있어 보인다. 첫째 신문의 전성기가 이미 있었고, 둘째 신문은 문예 쪽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언어가 복잡해지는 건 언어 자체가 지닌 불완전성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사전에 오르거나 공공기관에서 쓰는 언어는 엄밀한 기준 아래서 선택되어야 오해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말글을 갈고닦는 것이 단순히 낱말 사용의 편의성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과 함께 섬세함과 정치함을 함께 엮어 나가는 것이라면 낱말 사이의 차이 역시 놓치지 말아야 한다.
표준국어대사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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