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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문투1-세 개의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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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번역문투란 한문, 일본어, 영어 등에서 학습한 말이나 문투를 우리글에 그대로 사용해 굳어진 형태를 말한다. 우리말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직역한 문투를 일상에서 반복해 쓰고, 또 익히다 보니 어느새 우리말을 밀어내고 뿌리를 내린 것이 많다. 우리 곁을 파고들어 편안하고 익숙해져 버린 번역문투들을  일률적으로 혹은 기계적으로 다 없애고 고쳐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러한 번역문투들 때문에 스러지는 우리말이 있다면 되도록 살려서 쓰는 것이 어떨까 하는 의미에서 번역문투를 다뤄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사람들은 대부분

  우리가 이젠 아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싸잡아하는 말투,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대부분의 국가들은,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은 영어(most of ~, the bulk ~, the major ~, greater ~ …) 어순을 그대로 따온 것이다. 번역문투가 자리 잡기 전에는 '과학자 대부분은, 국가들은 대부분, 정치인은 거의' 정도로 썼을 것이다. 
 
  예 1) 그는 수입의 대부분을 저축한다.
         그는 대부분의 수입을 저축한다.
 예 2) 학생 대부분이 모임에 참석하였다.
         대부분의 학생이 모임에 참석하였다.
 
  예 1, 2)에서 어느 글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지 궁금하다.
  필자는 예 1)은 전자, '그는 수입의 대부분을 저축한다.'가 자연스럽고, 예 2)는 후자 '대부분의 학생이 모임에 참석하였다.'가 자연스럽다. 어느새 번역문투에 물들어 있어서인 듯하다. 우리말은 '대부분'이 뒤에 오거나 '많은' 혹은 '거의' 등 다른 어휘로 수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세 개의 사과/사과 세 개

 
    숫자말이 뒤에 오는 우리말 어순과 달리 숫자를 앞세우는 것도 이미 자리 잡은 표현이다. “사과 세 개를 먹었다/세 개의 사과를 먹었다”를 비교하면 알 수 있다.
 
억울한 한 마리의 양이 생길 수 있지만→  억울한 양 한 마리가 생길 수 있지만
5명의 당내 추천 심사위원은→  당내 추천 심사위원 5명은
이날에만 1만 명의 고객이 다녀갔다.→ 이날에만 고객 1만 명이 다녀갔다.
10여 명의 탑승자  모두 사망→ 탑승자 10여 명이 모두 사망
 
  우리말 어순은 '명사 + 숫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영어 어순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시간이 지속되고 있다.
 

가장 많은 것 중 하나/아주 많은 것 중 하나

 
   주로 ' -est/most+of(in) ~ '를 잘못 옮겨와 굳어진 번역문투로 보인다. 우리말에서 영어투 ‘가장 많은 것 중의 하나’를 표현하려 할 때 쓸 만한 말은 ‘가장, 지극히, 극히, 최고, 최대, 제일 …’이 아니라,  ‘아주, 심히, 매우, 대단히, 몹시, 참, 굉장히, 사뭇, 무척, 퍽…’ 등에서 어울리는 말을 골라 쓰는 게 걸맞다.
  예를 들면,  “명동 거리는 서울에서 가장 활기 있는 곳 중 하나다”는 “명동 거리는 서울에서 가장 활기찬 곳이다”라고 하든지, 아니면 “명동 거리는 서울에서 무척 활기찬 곳 중 하나다” 정도로 써야 한다.
 
가장: 여럿 가운데 어느 것보다 정도가 높거나 세게
           가장 높은 산.
          그 아이가 우리 반에서 가장 빠르다.
          할아버지께서는 형을 가장 사랑하셨다.
 
  번역문투의 장단점을 아래와 같이 설명한 이도 있다.
 “번역문투는 원문의 이국적인 정취나 풍미를 전달할 수 있고, 원문 내의 특정 지역에서 사용하는 방언이나 등장인물의 특징 또는 신분을 구별하여 표현할 수 있으며, 목표 문화권의 문학 체계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요소나 어휘를 도입하여  언어 체계를 풍부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가독성을 떨어뜨려 글을 이해하기 어렵게 하고, 언어 고유의 말과 글의 체계를 훼손 또는 왜곡시키며, 궁극적으로는 한국어 고유의 어휘를 잠식하여 다양한 고유어의 활용에 제약을 가한다는 점과 문화 간의 패권다툼을 야기할 수 있다. 그래서 종래에 익숙지 않던 어떤 새로운 표현은 신선하면서도 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내며 한국어에 녹아들기도 하지만, 어떤 새로운 표현은 어색하고 이상해 듣는 이나 읽는 이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그러나 처음에는 이상하고 어색했던 표현도 어느 순간에는 전혀 어색하게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받아들여지는 데 문제가 있다. 그러한 과정에서 한국어의 다양한 토속어나 구문이 마치 세련된 표현이 아닌 양 여겨지면서 사라지고영어에서 비롯된 새로운 표현이 자리매김을 확고히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정적인 번역문투는 정보통신의 발달로 목표 언어 체계에 인한 신속한 파급력으로 확고히 뿌리내릴 수 있다.”(이근희 ‘영어교육의 영향과 우리글 속의 영어 번역문투’ 중)
 
 

 

표준국어대사전 참조, 이근희 ‘영어교육의 영향과 우리글 속의 영어 번역문투’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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